독립운동가가 독립운동을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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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열갑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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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는 1900년 한성부 용산방에서 태어나 천도교 계열 미션스쿨인 문창소학교를 나왔고
이후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1919년부터 1924년까지 용산역에서 역무원 겸 열차 운전 수습생으로 일했음
젊은 시절 이 의사는 일본을 무척 동경해 진심으로 일본인이 되고 싶어했고
조선인의 정체성을 버리고자 원어민 수준으로 일본어를 익혔으며 일본식 이름도 가지려 했음
허나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은 언제나 '2등 신민' 이었기에 노골적인 승진 차별과 열악한 처우로 인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음
"조선인으로 태어나 이태왕(李太王)의 옥안(玉顔)을 뵌 적이 없으며 경술병합(庚戌倂合) 후 신일본인(新日本人)이 되어
천황 폐하의 성안(聖顔)을 뵌 적도 없다. 또 조선 역사도 안 배웠고 일본 역사를 가르쳐 받은 적도 없다. 일국의 국민으로서
그 나라의 역사도 모르고 그 나라 제왕의 성안도 본 적이 없는 것은 참으로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후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어느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는 이름도 얻었지만
제아무리 술과 도박을 즐기며 향락에 빠져 산들 뿌리깊게 박힌 차별은 내지라고 다르지 않았고
결국 이 의사의 마음 속에 피어난 동경을 완전히 꺾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남
바로 쇼와 덴노의 즉위식을 앞두고 한글로 쓴 편지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인해 유치장에 구금당한 거임
딱히 문제될 내용도 없건만 그저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주일이 넘게 철창 속에 갇히게 되면서
이 의사의 순진한 열망이 유리처럼 산산이 조각나는 순간이었음
"교토 유치장 구경이나 오려고 돈 써서 여기 온 게 아니다. 나는 일본 국민의 자격으로 천황 폐하를 뵈러 온 것이 아닌가?
한글이 섞인 편지를 갖고 있다고 해서 무엇이 나쁜가? 역시 나는 조선인이다. 조선인 주제에 천황 같은 것을 볼 필요는 없다는 것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벌을 받아 유치장에 갇히게 된 것이다."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고, 따라서 사상도 저절로 변해... 누군가가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갈 기분이었다.
자신은 조선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우리 2천만 동포의 자주권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내선일체를 믿고 황국신민이 될려고 노력했으나 조sen징이 어딜! 하고 안받아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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