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의사가 인턴의 뺨을 때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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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가 있어서 올립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인턴 선생을 찾아가서 아이에 대한 상의를 했고(나는 종단의 교우들이, 다니는 집회장소가 달라도 알음알음으로
그렇게 넓고 깊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인턴 선생이 아이의 상황을 알아봤던 것이다.
당시 그 인턴 선생은 병원에서 왕따가 되다시피 해서 중환자실이나 수술실 출입을 하지 못해
우리가 수혈을 한 것은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보호자에게 아무래도 수혈을 한 의심이 가니 꼭 상세진료비 명세서를 확인해보라고 가르쳐준 것이었다.
나는 그때 그 인턴 선생에 대한 징계위원회 소집 요구를 두고 고민을 할 정도로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 정도의 사안이라면 가운을 벗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의사가 된다면 앞으로 심각하고 치명적인 상황을 만들 수도 있으므로
의사면허를 아예 박탈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나는 우선 당사자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친구의 인턴 수련을 정지시킬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나는 먼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의 질문을 했다.
“개인의 종교적 신념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어린 자식의 운명까지 부모의 신념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누구든 삶보다 죽음의 문제가 중요할 수 있다. 이차돈의 순교나 천주교 박해 때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수없이 죽어간 순교자들처럼, 왜국의 개가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열사들이나,
타인의 피를 수혈받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당신들의 죽음이나 같은 선택의 문제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아이의 삶 혹은 신념이 다른 타인의 삶에까지 개입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자식이야 어쩔 수 없이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번에 앰블런스에서 자네 때문에 적시에 수혈을 받지 못한 환자는
왜 자네의 종교적 신념으로 그런 상황에 처해야 하나? 그만큼 자네의 신념이 절대적인 것인가?”
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은 이랬다.
“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신앙은 확신이다. 그것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맹목성이 존재한다.
믿음이란 문자 그대로 믿어버리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 나는 내 종교를 믿고 있고 믿고 있다는 말은 곧 ‘따른다’는 뜻이다.
선생님의 관점에서는 ‘왜 다른 사람의 죽음에까지 개입하느냐?’라는 질문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을 확신하는 내 관점에서는 그냥 두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구원이다.
만약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면 아예 ‘믿음’ 자체를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소수로서 존중받지 못함은 알지만, 그래도 나는 내 믿음대로 행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내 관점에서 보면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녀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틀린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대목에서 수혈의 의미를 이야기하거나 에니즈나 간염 등의 사례를 들어서 수혈금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스스로 그냥 그 상황에서 죽으면 되지, 왜 수혈이 의무가 되는 ‘의사’의 길을 택했는가?
만일 그것이 확신이라면 다른 직업을 택했어야 하지 않나?”
그녀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애석하게도 우리 교파에는 의사가 거의 없다. 아주 드물게 나이가 들어서 우리의 교리에 믿음을 가지고 뒤늦게 입문하게
된 의사가 몇 분계시지만, 그 수가 극히 적다. 더욱이 수혈을 거부한다고 해서 죽음을 쉽게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도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다만 수혈을 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들을 위해서 수혈 없이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거나 그러한 의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의사들이 있어야 한다.
만약 선생님 같은 분이 내 담당 의사가 된다면 나는 원하지 않은 수혈 때문에 정신적인 불구자가 되거나,
수혈을 하지 않을 경우에도 사실 속수무책으로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전통적 가치 기준으로 보면 수혈을 거부하는 우리들의 목숨도 중요하지 않은가.
백만 명 중에 한 명이 앓고 있는 희귀병 치료에는 일류 의사들이 매달리면서, 백만 명이 넘는 우리들의 문제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우리도 대수술을 받으면 두렵고 무섭다. 이럴 때 우리들을 위해서 어떤 의사가 그나마 수혈을 받지 않고도 최대한
생존율을 높여줄 수 있는 연구와 배려를 해준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지 않겠는가? 이것이 내가 의사가 된 이유다.“
사실 나는 인턴 선생이 가진 종파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의사로서 수혈 문제와 국가의 일원으로서 군복무 문제 등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그 사람들이 지키려는 원리주의적인 삶은 어떤 면에서는 현재 타락한 기성교회에 대한 모범이 될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은 생명을 담보로 성서에 씌어진 ‘피를 취하지 말라.’라는 구절을 그대로 지킬 만큼 소위‘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즉 수혈 문제를 일으킨 만큼 다른 기준도 그만큼 엄격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녀의 오류를 그쯤에서 덮어두기로 했다.
그녀가 외과나 내과처럼 수혈로 인해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전공을 택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더 이상 그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진단 방사선과 진단의 과정을 마치고 같은 교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의원을 개설해서 진료중이며,
교인들이 심각한 외상이나 기타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 때, 자신들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조언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혈액학회 회원으로서 대체수혈 문제에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환자가 위험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사로서 수혈거부라는 종교적 신념과 맞닥뜨릴 때 의사는 과연 무엇을 먼저 존중해야 할까.
참 난처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 박경철,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중에서 -
나중에 여호와 증인이라고 하는 말종들이 사고 나서 과다출혈로 수혈이 필요하지만 의사들이 환자의 종교를 존중해서 안 한다고 할 때 얌전히 죽음을 받아드릴 수 있는지 보고 싶다
널 다구리 칠 거니깐 하나님에게 도와달라고 해!!! 넌 여호와 증인이니깐 도와주시겠지 하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라고 할 수 없는 게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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