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보급선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경상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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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꾸는고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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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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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통틀어 대량의 물자를 수송하는 데는 언제나 물길을 통하는 것이 육로를 통하는 것보다 유리한 법


그래서 임진왜란이 벌어졌을 때 일본군이 구축한 보급 축선 2개 중 더 많은 보급을 수행한 건 경주-영천-상주 라인의 육로보다는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로였고, 당연히 일본군은 낙동강을 안정적으로 장악하기 위해 전국시대의 노하우를 불러옴


전쟁에서 방어를 수월하게 수행하도록 본성 주변에 여러 개의 지성을 둬서 하나의 지성이 공격받으면 다른 지성들이 지원하고 본성에 주둔한 기동군이 적을 요격하러 나서도록 한 시스템을 낙동강에 적용해서


기동군 역할을 할 본대는 부산에 주둔하고, 낙동강을 따라서 곳곳에 200~300명 정도의 병력이 주둔할 목책성을 여러 개 배치해 이들이 조선군에 대한 감시초소와 조운선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놓은 거




이건 적이 공격해왔을 때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꽤 효율적인 시스템이었지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음


바로 저렇게 요새화한 지역이 원래부터 아군에게 충성하는 홈그라운드면 상관 없는데 적대적인 지역에서 저러고 있으면 성 밖으로 나갔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 결국 200~300명 단위로 고립사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는 거임


당연히 일본군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점령지를 나름대로 안정화시켜보려고 했는데...그게 생각만큼 잘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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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일본에서는 전쟁으로 영토를 점령하면 백성들이 군말없이 와서 새로운 영주 나으리한테 인사도 하고 어? 세금도 제깍제깍 바치고 그러는데, 이 조선 놈들이 농경지 버리고 도망가 난민이 되고는 도통 돌아오지를 않는단 말이지


거기다가 배고파진 이 난민들이 도적떼가 돼서 일본군이 관리하기 시작한 논밭을 서리하거나 군량창고에서 긴빠이를 해가는 일도 벌어지고


그래서 일본군이 어떻게든 민심을 잡아보겠다고 확보한 조세미나 관아 창고에서 얻은 식량을 백성들에게 뿌리기도 했고, 일부 백성들이 이에 호응해 이후 반적이라고 불리게 되는 일본군 부역자가 되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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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휼 그거 원래 나랏님들이 당연히 하는 거 아님? 그건 그렇고 농사지어야 되는데 저 왜놈들은 언제 그만하고 집에 간다냐?




설상가상으로 경상좌도에서 벌어진 여러 하급 지방관들의 분투 덕분에 1592년 5월부터는 경상도 곳곳에서 일본군 지배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서 지방 유력자들과 패잔병들 주도로 들고 일어난 의병들이 출몰하기 시작함


점령지 민간인 통제 불가+게릴라 활동 500배가 중첩이 된다고


그 결과,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낙동강 일대의 일본군 거점들은 프로이스 신부의 말을 빌리면 '500명 이상 모여 다니지 않으면 위험했다'라고 할 정도로 조선군의 매복에 시달리며 죄다 적지 한가운데에 외딴 섬마냥 갇혀버리게 됨




낙동강 보급선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조선군 유격대 소탕하러 부산에 있는 본대가 24시간 분주하게 뛰어다닐 수도 없고, 좀 많이 곤란해진 일본군이 대응책을 고심하는 사이 경상우도의 조선군은 빠르게 결집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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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도에 도착한 초유사 겸 경상우병사 김성일이 진주성을 거점으로 곳곳의 관군을 규합하고 김면과 곽재우 등 의병장들을 임시직 무관으로 임명해가며 최소 5000명을 넘기는 야전군을 편성한 거임


그리고 이렇게 준비된 경상우도 조선군은 진주판관 김시민을 선봉으로 1592년 6월 내내 창녕과 밀양, 진해, 창원 등지의 일본군을 두들겨댔음


이제 부산의 경상도 방면 일본군 본대는 수시로 찔러들어오는 경상우도 조선군의 공세를 견제하느라 진짜로 낙동강 유역의 아군 초소들을 신경쓰지 못하게 되었음




그리고 7월 중순, 조정에서 반격 개시 명령이 하달되고 경상좌도에서 영천성을 공략하기 시작했을 때 경상우도 방면은 정말 예쁜 각을 하나 잡게 됨


창원과 밀양 쪽으로 계속 찌르기를 시도하고 있는 함안군수 유숭인과 김시민의 주력군이 부산의 일본군을 묶어두고 있고, 김성일이 혼신의 병력 펌핑으로 모아놓은 천 단위 여유 병력이 있는데, 저기 낙동강 곳곳에 300명도 안 되는 일본군만 모인
고립된
(중요!!!) 거점이 줄줄이 서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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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이 싹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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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선판 바다로의 행진이 시작되었음


진주에서 출발해 신속하게 기동한 조선군은 낙동강 상류부터 출발해서 5~10배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일본군 목책성들을 하나하나 박살내며 남하하기 시작했고, 북쪽부터 아군 거점들이 하나씩 작살나기 시작한 일본군 분견대들의 운명은 셋으로 갈렸음


조선군 웨이브에 쓸려나가서 시체1이 되던가, 목책성을 버리고 탈출해 부산의 본대에 가까스로 합류하던가


아니면 그렇게 탈출하다 조선군 매복대에 걸려서 시체2가 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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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시발 안 그래도 불안정하던 보급선이 미국 가버렸어요!


안 그래도 7월부터 이미 보급이 불안불안해서 전라도 곡창지대 장악을 위해 진입을 시도하다 이치 전투에서 컷당했던 일본군은 진짜로 새로운 보급루트를 뚫던가 전라도를 따던가 둘 중 하나는 해야 되는 처지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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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디서 자꾸 조선군이 자연발생해서 경상도에 분탕질을 치는가에 대한 결론으로 진주성이 조선군 본대가 모인 거점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 일본군은 전라도를 공략하든 경상도 방면 조선군을 박살내든 이젠 정말 진주성뿐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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