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퓰리처 사진에 깃든 비극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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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의 굶주린 소녀>
(1993) -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
1989년 4월, 수단 정부와 남부 수단 반란군 간의 전쟁인 제2차 수단 내전이 일어남과 동시에 대규모 가뭄이 겹치며 수단 남부 지역에 거대한 기근이 닥친다.
그러자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기구를 비롯한 UN 단체와 35개의 비정부기구들이 수단 남부를 지원하기 위해
수단 라이프라인 작전
을 개시하게 된다. 그러나 수단 라이프라인 작전은 지속적인 재정난를 겪어왔고, 1993년 3월, 두명의 프리랜서 사진가가 수단 기근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수단에 도착한다.
그중 한명이 위의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
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난 케빈은 어릴적부터 아파르트헤이트의 실상을 목격하며 살아왔고, 1983년 교회 거리 폭탄 테러를 목격하고는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정했다.
타이어를 목에 걸고 화형을 시키는 일명 '목걸이' 처형을 최초로 알린 것도 카터다.
아무튼 수단에 도착한 카터는 동료 조앙 실바와 함께 수단 기근의 실체를 사진으로 남겼고, 그렇게 찍힌 사진들 중 하나가 위의 사진인, 캠프 근처에서 힘을 잃고 웅크린 아이와 먹이를 기다리는 독수리의 사진이다.
그 해 뉴욕타임스를 통해 카터가 찍은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수단 문제에 대한 국제 여론을 환기시켰고, 아프리카의 식량난을 알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사진으로 카터는 이듬해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얼마 안 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허기진 어린이를 구하지 않고 사진 찍을 생각부터 했냐는 거센 항의를 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카터를 향해 '인간성 대신 상을 택했다.'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퓰리처상은 윤리나 인간성과는 무관한 것이냐는 질책까지 무성했다. 카터는 '사진을 찍은 뒤 바로 어린이를 도왔다'며 해명했지만 비난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이미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퓰리처상의 상금은 3000달러에 불과했다)과 PTSD에 시달리던 그는 큰 심리적 고통을 받았고, 여기에 1994년 4월 18일, 그의 절친인 켄 오스터브룩이 남아공 흑인거주지역에서 취재 중에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카터는 정신적 한계에 달했다.
1994년 7월 27일, 케빈 카터는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배기가스를 집어 넣어 자살했다. 향년 33세.
제가 그럴 대접을 받을 만 하다면, 켄의 곁으로 가겠죠.- 유서의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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