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필요했던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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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열갑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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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 자금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사실 이 문제가 당시 일본에게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군비는 19억엔이였고 당시 일본의 1년 예산은 2억 6000만엔 정도였기 때문에 일본이 스스로 모았던 돈은 7억엔 정도였고 나머지 12억엔달하는 돈을 구하기 위해서 영국과 미국에 대규모 외채를 빌렸고 그럼에도 충분한 군비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해서 전쟁에 차질이 생겨서 원할한 전쟁수행에 문제가 생기던 그때 그때당시 러시아에서 유대인 학살에 깊은 원한을 품고 있던 미국에 있던 수많은 유대계 자본가들이 일본이 최대한 러시아와 전쟁에서 이길수 있도록 일본의 국채를 구입해서 돈을 빌려주어서 일본은 자금문제가 해결되어서 당초 계획했던 군비를 마련할수 있었다.
일
본의 국채를 구입해서 일본이 필요한 군비를 마련할수 있는 자금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미국내 유대계 자본가였던
제이콥 쉬프
2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뤼순항을 점령해야 했다.
러일전쟁 당시 최대의 요충지는 뤼순항이였다. 당시 뤼수항이 러시아군의 최대항구로 러시아의 함대인 태평양함대의 주력 본거지
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당시 러시아는 자신들 최대주력인 발트해에 있던 발틱함대마저 투입을 하자 일본군은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오는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뤼순항에 도착하기 전에 무조건 뤼순항을 점령해야만 했다.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뤼순항에 도착해서 태평양함대와 연합한다면 일본은 그대로 재해권을 빼았겨서 보급이 끊어지기 때문에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무조건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근거지인 뤼순항을 점령해야만 했다. 일본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어서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고 필사적으로 공격을 하였고 당시 뤼순항을 공격하는 일본군의 총사령관인 노기 대장도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시켜서 결국에는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뤼순항을 점령하는데 성공했고 결국 그로인해 러시아 발틱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로 갈수밖에 없었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기 위해서는 쓰시마 해협, 츠가루 해협, 소야 해협을 지나가야만 했고 이 3가지 루트 전부다 일본의 앞마당에 위치에 있었고 또 거기다가 해협입구가 좁아서 미리 병력을 매복해서 기습공격을 하기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결국 일본군이 훗날 쓰시마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는 결과로 이어진다.
뤼순전투에서 양측의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203고지
3 봉천(심양)을 점령해서 만주에서 주도권을 장악해야 했다.
봉천(심양)은 만주어로 묵던이라고 불렀던 도시로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기 전 청나라의 수도이자 만주 지역의 최대 도시였다.
분명히 일본은 뤼순을 점령하고 선전하고 있었지만 만주 최대의 도시인 봉천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확실히 만주에서 주도권을 장악
할수 없었고 따라서 일본군은 만주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봉천을 점령해야만 했다. 위치적으로 만주의 주도권을 장악한다면 조선에 대한 지배권과 주도권도 확실히 차지할수 있기 때문이다. 봉천전투에서 일본군은 25만 러시아군은 36만으로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그야말로 단일 전투에서 최대 규모의 야전이였다. 일본군은 여러차레 우회공격을 통해서 러시아군을 압박했고 결국 뤼순전투와 마찬가지로 봉천 전투에서도 일본군은 막대한 희생을 낸끝에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두어 봉천을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러시아군을 몰아내면서 만주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차지할수 있었다
.
러일전쟁 당시 최대규모의 회전이 발생한 봉천전투
4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전멸시켜야 했다.
당시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오는도중 뤼순항이 일본군의 손에 넘어가자 어쩔수 없이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로 갈수밖에 없었고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전멸시키지 못한다면 일본군의 해상제해권을 그대로 러시아에게 빼았겨서 보급문제로 전쟁에 질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전멸시켜야만 했고 손쉽게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전멸시키기 위해서는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오는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로 가서 충분한 연료를 충원바딕 전에 무조건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올만한 길목에 병력을 매복시켜서 기습공격으로 발틱함대를 전멸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쓰시마 해협, 츠가루 해협, 소야 해협 이 3가지 루트중 정확히 어느 루트를 지나가는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였다. 쓰시마 해협은 가장 향해 거리가 짧지만 그때문에 일본군의 매복을 우려해서 러시아군이 츠가루 해협이나 소야 해협으로 우회할수도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일본군 대본영은 소야 해협에 병력을 매복시킬려고 했지만 당시 일본군 연합함대 장관이였던 도고 제독이 발틱함대가 쓰시마 해협으로 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해서 대본영을 설득해서 쓰시마 해협에 병력을 매복시켰고 아무리 병력을 매복시켜도 발틱함대가 나타나지 않자 도고는 본인이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해서 병력을 훗카이도로 이동시키기 위해서 대본영에 허가요청을 했고 그러자 대본영에서는 딱 하루만 더 기다리자고 그런 도고제독을 달랬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 26일 하루를 더 기다린 도고 제독이 병력을 훗카이도로 이동시킬려고 준비를 할때 러시아의 석탄운반선이 상하이에 입성했다는 첩보가 전달되고 당시로서 장거리 향해에 필수적인 석탄운반선이 떨어져 나갔다는 말은 러시아군이 향해거리가 긴 츠가루 해협이나 , 소야 해협으로 오지 않고 가장 최단거리인 쓰시마 해협으로 오고 있다는 말이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 27일 한밤중에 러시아 발틱함대는 쓰시마 해협을 지나가다가 발틱함대 옆에 있던 러시아 병원선 한척이 불을 키고 이동하는 실수를 하고 그렇게 위치가 발각당한 러시아 발틱함대는 일본 연합함대에게 매복, 기습 공격을 당해서 그야말로 전멸하고 그렇게 일본은 딱 하루차이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완전히 확실하게 전멸시킬수 있었고 결국 러시아는 자신들의 히든카든인 발틱함대마저 전멸하자 결국 전쟁에서 확실한 일본의 우위를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전멸시킨 일본의 명장인 도고 장관)
4 러시아내에서 대규모 내분, 혼란이 발생해야만 했다.
일본군이 조선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만주에서는 뤼순을 점령하면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지만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일본의 마련한 군비는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일본군 역시 러시아군 못지않은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이였다. 이것이 러시아에 비해서 경제규모가 훨씬 작았던 일본이 계속 전투에서 승리해도 섣불리 전쟁의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이유였다. 따라서 일본은 최대한 빨리 러시아와 강화협상을 맺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는 것만이 아닌 러시아가 더이상 전쟁에 집중할수 없을 정도로 러시아내 대규모 혼란이 발생해야만 했고 일본은 그러한 상황을 노리기 위해서 전쟁 초기부터 아카시 모토지로를 보내서 러시아내 혁명가들에게 자금을 주어서 러시아내 곳곳에서 시위들이 발생하게 만들었다. 러시아는 그러한 자국내 시위들을 총질을 가하는 무력으로 진압하는 최악의 수를 두었고(피의 일요일) 그것이 발화점이 되어서 러시아 내에서 그야말로 대규모로 무력까지 동원되는 과격한 시위들이 빗발치게 되자 결국 러시아는 그러한 자국내 문제들을 해결하는게 우선이였기 때문에 더이상 일본과의 전쟁에 집중할수 없었고 결국 그로인해 일본이 원하던 대로 일본과의 강화협상에 나설수 밖에 없게 되었다.
(러시아 역사에서 한 분기점이 되는 피의 일요일 사건)
일본은 이 어려운 5가지 조건들중 그중에서 단 한가지라도 넘기지 못하면 전쟁에서 승리할수 없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어려운 5가지 조건들을 5가지 산을 전부다 넘어야만 했고 일본의 필사적인 노력과 행운까지 겹처서 결국에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 어려운 5가지 조건들을 전부다 클리어해서 결국에는 러시아와 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을 지배해서 이후 40년동안 일본제국은 전성기를 누리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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