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가 장례식에 양복을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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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4월,
1913년 2월 22일에 사망한
황태후, 융유황태후(서태후 조카)
의 장례식이 거행되었음
이미
청나라
자체는 망해버린 시점이었지만, 고작 1년도 안 지났고 물리적으로 박살나서 멸망한 것도 아니라
위안스카이ㆍ쑨원
쇼부로 영업중지시킨 것에 가까웠으므로
신생 중화민국 관료ㆍ군인들도 장례식에 참석하여 조의를 표했음
(심지어 국민당 등등, 혁명세력도 일부 참석했을 정도)
즉,멸망했지만 청나라, 정확히는 청황실에 대한 존경심은 나름대로 신생 공화국 체제에서도 상당했다는 것인데
덕분에 재밌는 소란이 하나 터졌음
현실에서 장례식에 참석할 때
양복, 혹은 적어도 검정 깔맞춤 복장
이 국룰인 것처럼
1913년, 당시 청황실 관련 행사는 청조 시절 복장이 국룰이었음
그래서 청나라 말엽부터 양복이 대세로 자리잡은 관료들조차 전부, 청조 시절 관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딱 한 사람
외교총장(외교부 장관) 쑨바오치(孫寶琦)
가
걍 양복 입고 참석해버렸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쑨바오치의 폭탄 패션을 보고 웅성웅성 거리며 크게 당황했음
하필이면 신해혁명 전부터, 프랑스 대사 시절에
동맹회
소속원들의 행동을 눈감아준 사례나
[한국사로 치면 대한제국 외교관이 공화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묵인하고 놔둔 셈.]
신해혁명 당시 산둥순무(도지사)로서, 산둥성 독립을 선포하는 등 혁명파에 힘을 실어줬기에
(다만, 산둥 주둔군이 죄다 혁명파라 떠밀린 것에 가까움)
일찍이 청나라 황실ㆍ복벽파들에게 호감고닉으로 찍힌 남자라
분위기가 점차 살벌해졌음
결국 푸이의 스승이자 관료였던
량딩펀(梁鼎芬)
이
"당신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야!"
"네놈이 산둥에서 저지른 일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다!"
"이 반역자 놈아!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갈!!! 외치며 쑨바오치에게 달려들었고
주변 사람들도 말리긴 커녕, 엄마아빠도 없냐며 거들었음
결국 쑨바오치는 뭐라 한 마디 제대로 못해보고 도망치듯 장례식을 빠져나갔고
끝내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했을 정도로 얻어터졌음
이 사건은 후일 장쉰의 복벽 사태와 함께
청나라 복벽 자체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 그냥 왕정 체제 자체의 인기도가 수직하락한 이유도 있고)
적어도 잔존 황실 인사에 대한 존경과 예우는
상당히 길게 이어졌음을 알려줌
물론 이것도 1910~20년대까지라
점차 세대가 바뀌며
청나라 황실에 대한 여론이, 예우 대상에서
세금 퍼먹는 군식구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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