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형님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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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미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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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님은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였음.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맞고 다니신 적 없고, 내가 맞고 돌아오기라도 하면 그날 그 학교 전체가 진짜 좆 될 정도였음.

말을 별로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해도 그냥 단답식이었음.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 편도 아닌데도 어릴 때부터 형님 덕만 보고 자라서 난 철이 들지를 않았음.

대체로 용돈 필요할 때나 연락 드려보는 정도였으니까.

우리 아버지도 형님하고 똑같은 성격이시라 세부자가 있을 때에는 진짜 숨이 막힐 지경이었음. 

무슨 묵언 수행도 아니고 딱 필요한 말만 단답식으로 주고 받으시는데 내가 무슨 미친 짓을 해도 이 분들의 감정을 끌어낼 방법이 없을 정도였음.

형님은 아버지를 따라 해군이 되셨고, 솔직히 말해 해군이 되기 이전에도 이미 군인이시라 놀라울 것도 없었음.

반면 나는 서울로 상경해 이 회사 저 회사 짧게 짧게 다니다가 결국 그럭저럭 괜찮은 중소기업에서 겨우 내 밥벌이나 하면서 살고 있었음.

그러던 중에 전화가 왔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였고, 원래 눈물 많은 편이긴 하지만 그때부터 거의 오열했음.

이상한 건 아버지께서 성격이 성격이신지라 대화도 사실상 해 본 적이 없고 부자간의 정을 느낄 추억도 거의 없었는데도 그냥 눈물이 쏟아졌단 거임.

도저히 운전을 할 자신이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아버님의 장례식장을 갔고, 형님께서는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필요한 일들을 묵묵히 하셨음.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도 약간 정신을 차리고 장례절차를 도왔음.

저녁이 되고, 형님께서는 아버지 친구분들과, 형님 친구분들과 함께 조용히 술을 드시며 아버지 이야기를 하셨고, 결국 난 피곤해서 일찌감치 잠이 들었음.

근데 오래 자지도 못 하고 아버지 꿈만 꾸다가 일어나서 아버지께서 좋아 하시던 담배를 한 대 피워봤음.

여전히 독하기만 하고 맛도 없는 담배라서 눈물이 났음.

발인식이 아침인데 형님은 드물게도 늦잠을 주무시고 계셨음.

처음으로 형님을 깨워봤음.

형님이 날 깨우시다가 안 일어나면 긴 말 할 것 없이 발로 까버리시던 기억을 떠올렸음.

형님께서는 눈을 뜨시고 평소처럼 각 잡힌 움직임으로 앉으셨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음.


"형, 준비하고 아빠 보내드려야지..."


형님은 빨개진 눈으로 내 얼굴을 보셨고,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음.


"가지 마시라 캐라."


형님이 겨우 짜낸 말에 난 다시 한 번 오열했고, 그런 나를 다독이면서 형님도 우셨음.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철이 들었음.


출처 : 지금은 회사 에이스로 활약 중인 경상도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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