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 중국 강서성 난창시.
농민 웅모씨는 동네 뒷산 곽돈산에서 온 몸에 흙이 잔뜩 묻은 외지인들을 목격한다.
웅씨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물어보자, 외지인들은 산토끼를 잡아 팔겠다는 어설픈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3월 23일, 새벽에 시끄러운 소음에 개들이 짖게 되어 일어난 웅모씨가 외지인들이 뒷산에서 흙을 파내고 있는 것을 보고 공안에 신고했고, 그렇게 도굴꾼들은 공안에 체포당하게 된다.
놀랍게도 동네 뒷산인줄 알았던 것은 고대의 무덤!
발굴단장에 따르면 도굴꾼이 이미 14.8m나 파고 들어가 곽실을 보호하던 목조로 된 널빤지를 해체 중이었던 시점이라 정말 조금만 더 팠다면 곽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무덤 안에서는 이미 오대십국 시기의 도굴갱이 있는 등 여러번 도굴 흔적이 있었지만, 도굴꾼들은 죽은 이를 반대로 모시는 관념에 얽매여 왼쪽으로 진입했는데, 한漢 대에는 '죽은 이를 산 사람 모시듯 한다(事死如事生)'가 예법이었으므로 예상한 묘실이 텅 빈 것을 보고 이미 도굴당했다 지레짐작하여 철수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사 결과 산 전체가 총면적 4만 제곱미터의 묘원이라 발굴팀은 부장품을 묻어두는 주변의 부장묘들부터 발굴을 시작했지만, 이쪽은 옥검이나 도자기 쪼가리만 나오고 도굴꾼들이 흘린듯한 북송 시대 물건이 나오는 등 오래 전에 털렸다는 것이 확정났다.
참고로 공안들에게 붙잡혔던 도굴꾼들도 주변의 부인묘를 이미 도굴해 금으로 만든 용을 암시장에 내놓았지만 너무 가치가 높은 것은 물론 대놓고 장물이라 감히 먹을만한 장물아비가 없어 공안에 무사히 회수되었다.
그렇게 2014년, 드디어 주묘 발굴에 돌입하고
발굴된 것은 문자 그대로 돈의 산
오수전만 무려
200만여개
라는 엄청난 숫자였기에 동전들을 일일히 떼어내는 것도 상당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메인인 곽실에서 출토된 것은
기원전인 전한 시기의 금 유물들
그 양은 무려
250g 금병 285개
1kg 금괴 20개
80g
마제금
수십여개
기타 부장품까지 합하면 금만 수백kg이 나오면서 알려진 전한 시기 묘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금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호화로운 무덤의 주인은 한 무제의 손자인 전한 폐제 유하로, 곽광에 의해 한 달여 만에 폐위되어 해혼후로 강등당했음에도 이런 엄청난 양의 부장품이 출토된 것이다.
정황상 이 자금을 바탕으로 반란을 일으키거나 혹은 천자에게 금을 바쳐 다시 낙양으로 귀환하고자 하였으나, 33세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며 그대로 부장품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