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는 1895년 출간 후 1년 만에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며 사회심리학과 집단심리학의 토대를 마련한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에는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을 넘어 정치인, 투자자, 사업가 등 대중의 마음을 읽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르 봉은 “오늘날 국가의 운명은 더는 군주의 회의가 아닌 군중의 영혼 속에서 준비되고 있다”고 말한다. 군중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진단이다. 이전에도 군중은 심리학 분야에서 분석된 바 있지만 군중의 정신구조를 포괄적으로 탐구해 통찰하는 대신 이들을 문제 많은 집단으로 치부해 억누르려는 양상을 보였다. 르 봉 역시 프랑스혁명기 때 군중이 보인 집단적 폭력성에 경악하면서도 이미 도래한 군중의 시대를 맞이하고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긴 분량에 걸쳐 군중의 형성과 정의, 속성을 분류하고 군중을 추동하는 요인을 구분하는 등 집요한 분석을 이어나간다.

르 봉이 분석한 군중은 개인성과 이성이 말살된 존재다. 합리적 사고를 상실하고 정신적 단일성의 원칙에 굴복한다. 르 봉이 설명하는 군중의 대표적 특징은 추론 능력과 비판 정신의 결여, 감정 과잉, 높은 충동성 등이다. 그에 따르면 특출난 개인도 군중을 이루면 집단성의 논리에 굴복하며, 무정부 상태와 노예 상태를 오갈 수 있다. 이런 내용 탓에 ‘군중심리’는 히틀러, 무솔리니 등의 독재자들에게 정치적 선동 도구로 악용돼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르 봉은 군중을 혐오하고 경멸하면서도 이들을 악행만 일삼는 수동적인 집단으로만 보지 않는다. 르 봉은 군중이 무의식 상태에 있다고 보지만 이는 군중이 가진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개인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군중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경우는 현대에도 몹시 흔하다. 군중의 방향성은 본질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군중은 간접 요인과 직접 요인에 의해 추동되며 무시무시한 폭도로도, 역사의 거대한 변혁을 만들어내는 집단적 주체로도 기능할 수 있다.

‘군중심리’를 읽은 후 누군가는 집단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는 군중에 비난의 시선을 보낼 수도,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벼려낼 수도 있다. 혐오, 경멸, 두려움, 경외를 담아 군중의 다층적 면모를 조망한 ‘군중심리’는 여전히 논쟁적인 책이다. ‘군중심리’의 깊이 있는 성찰을 생산적 긴장으로 전환하는 일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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