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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진짜 인구는 얼마나 됐을까? [리얼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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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아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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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사회에서 인구란 나라의 국력과 특히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 


하지만 고려시대의 인구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추정을 해보는 수밖에 없는데, 그 추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지.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 설이 있으니 그럼 지금부터 그 두 주장을 낱낱히 파헤쳐 보도록 하겠다.




[210만~300만 명 설]

우선 이 설의 근거는 아주 명확함. 짱깨국 송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서긍이란 놈이 고려의 인구 
210만호(戶=가구)를 210만구(口=사람 수)로 오기한 기록 (혹은 훼손된 기록)을
 짱깨들 역사서인 송사에 옮겨 적었고, 한국의 일부 노예주의 식민사학자들이 그 내용을 그대로 추종하여 받아들이면서 "아무리 그래도 210만 명은 너무 적으니 
대략 300만 정도로 끼워 맞추면 되겠지?"
 끝.


정말 이게 다임.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는 수준도 못되는 뇌피셜이지만, 감투는 쓰되 연구하지 않는 게으른 학자들과 카르텔을 형성하고 똥이나 싸지르는 인터넷 기러기들 그리고 나무위키 등을 통해 [고려 인구 300만 명 설]은 
이미 팩트인냥 널리 퍼져
있음.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중세 GDP 순위니뭐니 하는 기괴한 자료까지 만들어진 상황. 추가 근거랍시고 조선의 농업기술이 고려보다 발달했음을 들어 고려시대 인구를 추정하기도 하나, 
농업기술의 발달은 농업 중시 국가였던 조선에서 당연한 수순
이었을 뿐 그것이 애초에 상공업 중시 국가였던 고려의 인구 설명 근거가 될 순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교과서는 고려시대 경제 발달의 원동력으로 농업생산량의 확대를 들고 있는데, 즉 
고려 때 이미 상당한 정도의 농업기술이 발달
함과 동시에 그에 따른 잉여생산물이 증대되었고 이는 곧 국가의 제도와 맞물려 시장경제에 기반한 수공업기술 발달과 상업의 활성화로 연결 되었다는 논리임. 다시 말하면 농업기술과 함께 귀족사회의 취향을 맞추기 위한 수공업기술 또한 극도로 발달하였기 때문에 농민과 수공업자들이 오히려 
남는 쌀과 공예품을 경쟁적으로 내다 파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관념이 형성
되었으며 이에 따라 나라는 자연스레 부강해졌다는 뜻. 반면 조선은 농업생산량의 확대라는 크나큰 이점을 가지고도 그것을 상업경제의 발달이 낳는 부유함과 연결시키지 못한 채 수백년 간 정체 혹은 퇴보한 것이 팩트임. 18세기 영/정조 시기나 돼서야 살짝 꿈틀하는 정도? 이때 서양에선 벌써 산업혁명 일어남ㅋ 


마찬가지 관점에서 기본적으로 고려라는 나라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지향했다면, 조선은 대량생산 수탈경제를 근본에 두고 연명한 나라였는데 그 결과 
고려/조선 두나라의 경제력 자체부터 어마어마한 격차
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체제적 차이와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쌀생산량을 인구 증가에 직결시키는 것은 어불성설. 덧붙여 조선이라는 나라가 근대 서양처럼 무슨 비약적인 의료기술의 발달을 이루어 인구 증가로 직결되는 과학적 진일보가 있었다면 또 모를 일이나.. 택도 없는 소리. 
조선 초기도 아닌 후기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3-40살에 불과
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인 
위생수준(목욕문화) 또한 고려에 비해 매우 열악
했던 조선이 고려에 비해 인구가 증가하긴 했을까? 자체도 의문임. 


결과적으로 이 같은 주장은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했던 조선조 500년 동안에 병에 들어 사망한 자는 몇이고 기근으로 사망한 수는 또 몇인지, 
과연 고려시대 유아의 조기 사망률과 굶어 죽은 아사자의 비율이 조선시대보다 높았다고 단정할 수 있을지
를 생각해봤을 때 더더욱 합리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고려 말 여러가지 상황적 변수들과 
몽골/왜구/홍건군 등의 숱한 침입으로 인구가 얼마나 갈려나갔을지
 또한 상기해 본다면 전성기 고려의 인구보다 조선의 인구가 무조건 증가했으리라는 추측은 논리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





[780만~1000만 명 설]

일단 첫째로 위에서 제시한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군사력을 강병 60만이라고 적어두었음. 
210만 인구인데 강병이 60만? 즉 둘중하나는 개소리
라는 뜻인데.. 무엇이 개소리인지 아래 근거들을 보고 판단해보자.


둘째로 역시 고려도경에서 서긍은 고려를 두고 예로부터 
땅에 비해 사람이 극히 많은 나라라고 기록
했음. 시발.. 짱깨 송나라 인구는 5천만이니 1억이니 하면서 그 짱깨가 210만 명을 두고 저렇게 표현 했다고?

ㅇㅇ개소리   

 

셋째로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인구가 210만 명이라면, 고구려의 인구는 100만이 채 안됐다?
는 소린데 인구 100만도 안되는 나라에 짱깨 수나라가 전 국력을 쏟아 붓고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끼워맞추기도 민망한 수준의 해괴한 발상. 게다가 210만 명을 호로 환산하면 대략 40만호. 참고로 『구당서』에는 멸망 당시 고구려의 인구가 69만호(약 345만 명 이상), 백제의 인구가 76만호(약 380만 명 이상)으로 기록 돼 있는데, 시발 무슨 통일하고 오히려 인구 수백만이 줄어드는 나라도 있냐? 따라서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삼국의 인구+발해의 인구까지 흡수한 고려의 인구는 아무리 적게 잡더라도 210만호 이상으로 보는 것이 합당. 

 

넷째는 고려가 
동원한 군사력에 대한 『고려사』의 기록
이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동원하는 군사력은 전 인구의 3~5%라고 하지. 


★ 일리천 전투: 10만 명

★ 정종 대 광군: 30만 명

★ 여요전쟁 2차: 30만 명

★ 여요전쟁 3차: 21만 명

★ 여진정벌 2차: 18만 명 (후발대 포함 30만)

★ 홍건군 격퇴: 20만 명 

★ 요동정벌 2차: 5만 명-


참고로 고려는 위 병력들을 제외하고도 양계 주진군의 국경 수비대 약 14만 명과 개경 중앙군의 수도 방위대 4만5천 명을 추가적으로 보유하고 있었기 떄문에 최소 10만 이상 20만 이하의 +@ 병력을 운용하고 있었음. 이게 210만 인구에서 나오는 군사력이라고..? 고려의 인구가 210만 명인 것을 믿으려면 이 모든 기록을 부정해야 하는데? ㅇㅇ개씹소리쥬..? 하. 지. 만


[300만 명 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다수설이라 우기며 정사正史의 모든 기록을 부정하는 교활한 만행도 서슴치 않는 중. 가령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군의 실제 규모는 6천 명 이하였고, 광군은 석탑을 쌓는데 동원됐다는 이유로 오합지졸 노동부대로 폄하하며, 별무반의 병력은 장부상의 총병력에 불과할 거라는 둥, 기록은 부정하고 추측은 우선하는 온갖 뇌피셜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환장파티. 평시에 군대가 노동에 동원 될 수 있는 건 세계 만국의 당연지사인데, 직업군인이 아니고 노동에 동원됐다 하여 노동부대라 칭한다면.. 여기 군생활 하면서 노동장 한번 안나가본 이가 과연 있을까? 장부상의 총병력이 18만 명이면 서긍이 말한 60만을 부정할 근거는 또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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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임진왜란 당시 고려 정부에서 편찬한 『고려실록』이 소실되었으므로, 추정치를 제외하면 고려의 인구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만 고려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매우 부강했다는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조선은 개좆밥인데 고려는 왜이리 부강했냐고 한탄하는 기록이 수두룩함) 어떻게든 고려의 국력을 깎아 내리려는 쪽에서는 
끼워맞춘 추정치라는 교묘한 방법으로 국력의 지표인 인구를 최대한 낮춰
서 말하기 급급한데,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자료가[고려 인구]로 검색을 하면 상단에 고정돼 있을 정도로 만연하게 퍼져있다는 것임. 근본적으로 이런 잘못된 자료를 근거로 그 시대를 왜곡하니 21세기 현대에 와서도 "고려 부강했다는 기록은 다 주작임 인구부터 개좆만한 나라가 무슨ㅇㅇ" 하는 노예사관이 주입될 수밖에 (참고로 고려의 영토도 이와 비슷한 수법으로 왜곡돼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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